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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확대해석)

by 아예다른 2019. 12. 10.

 

  • 본 리뷰의 모든 내용은 주관적 의견이며, 객관적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콘텐츠의 이미지는 '왓챠플레이'와 '다음 영화'에서 갈무리한 이미지이며, 재가공한 것입니다. 

아사코 / 2018 / 일본 / 로맨스 / 119분 / 소설 원작

  •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 히가시데 마사히로, 카라타 에리카, 야마시타 리오 

이곳 '왓챠 플레이 추천작'에서는 항상 스포일러 없이 콘텐츠를 소개해왔다. 그런데 이 리뷰엔 영화의 매력과 또 다른 의미를 소개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참고하길 바란다.

"이 시국에 일본 영화가 웬 말이냐!"라고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어쩌면 <아사코>가 지금 시국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봤을 때는 평범한 멜로물이구나 생각했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전하고자 하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미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추측이니, 감독의 의도와 틀리거나 다를 수 있는, 하나의 의견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인 것.

'데칼코마니(Decalcomanie)'는 종이의 한쪽면에 물감을 바르고, 반으로 접으면 반대쪽에 물감이 묻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미술 기법을 의미한다. 그럼 양쪽면에 접은 선을 기준으로 대칭되어, 같은 무늬가 찍힌다. 그 대칭된 두 그림은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데칼코마니는 사실 좌우가 바뀐 것으로 똑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이미지다. 영화 초반 '고쵸 시게오' 사진전에서 아사코가 본 쌍둥이의 사진처럼 말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서있는 사진이지만, 그 둘은 다른 사람이니까. 

영화는 계속해서,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바쿠와 료헤이, 바다와 같은 하늘(오로라), 낮 공연과 밤 공연, 등등. 이런 설정과 대사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아사코에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와 사랑에 빠지고, 같은 전시회를 두 번 방문하며, 토호쿠의 바다를 두 번 보러 간다. 그러나 비슷하지만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바쿠와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료헤이'와는 정말 힘들게 연인이 된다. 바쿠와 봤던 사진전은 아주 쉽게 보고 지나쳤지만, 료헤이와는 전시회 직원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보게 된다. 료헤이와 바다를 갔을 때는 토호쿠 재건 축제에서 주민들에게 환대를 받았지만, 바쿠와 왔을 때는 어리석은 친구라며 잔소리를 잔뜩 먹고 돌아온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뒤집어지며 '전복'되는 것이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말이다.

그래서 헷갈리고 착각하는 사람들.

비슷하게 보이기에, 다른 것을 모르고 착각한다. 료헤이는 회사 로고를 영문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건의했다가 상사에게 혼이 나고, 처음 아사코와 만났을 때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표했기에) 좋은 감정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아사코가 해준 카레를 라따뚜이라고 말하며, 아사코가 말한 바쿠라는 이름을 듣고 동물(아메리칸 테이퍼)을 이야기하는 줄 안다. (아메리칸 테이퍼는 돼지인지 코끼리인지, 구분하기 힘든 외형을 지녔다.)

아사코는 바쿠가 자신을 사랑했고,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료헤이보다 바쿠와 함께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자신이 바쿠를 만났던 곳에 가면,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아사코가 차에 탄 바쿠에게 이별을 고했던 손짓을, 바쿠는 자신을 찾은 줄로 착각한다. 

마야는 자신의 연기가 형편없다는, 쿠시하시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사실은 부러워서 그런 말을 한 거라고 고백한다.) 

등장인물들이 착각하고 오해하면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원수처럼 변하기도 한다. 마야의 연극의 대사처럼,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재난이 벌어지고 난 후.

바쿠는 현실감이 없는 인물이다. 전형성을 탈피하기 위해 만든 인물이 아니라, 재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인다. 재난은 불가항력이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바쿠는 아사코에게 갑자기 나타났고, 그녀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녀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듯이, 사랑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급습했다. 바쿠는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오고 싶을 때 온다. 1,2주 동안 말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녀석이라는 오카자키의 대사에서, 바쿠란 인물이 정의된다. 아사코와 만나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아사코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쿠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감정이 결여된 인물처럼, 충동과 호기심만이 그의 동력이 되는 듯하다. 가족이 재난피해를 입었음이 분명한데도 관심이 없다. 토호쿠는 바쿠의 부모님이 살던 곳이지만, (아사코는 료헤이와 도우러갔지만) 바쿠는 한번도 간적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바다를 막은 둑을 처음본다는 대사.)

재난이란 테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관통한다. 사랑이란 감정조차 그 재난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 것처럼 느껴진다. 재난이 벌어지고, 등장인물의 관계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화를 맞이하게 되니까. 재난이 물질에 상흔을 남기듯, 관계의 재난은 인간의 마음에 회복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쓰나미를 막기 위해 둑을 쌓으면, 바다를 볼 수 없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더 오랜 시간과 노력, 희생이 필요하다. 료헤이는 평생이 걸려도 안될 거라고 말한다. 

성장하는 사람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 니체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고통을 이겨낼 때 심적으로 성장한다. 후회와 슬픔이 좌절의 시간을 지나면,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하는 동력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사코의 이름은 아침을 뜻한다. 아침이 하루의 시작인 것처럼, 아사코는 극의 초반에는 미성숙한 아이 같다. 빨래를 제대로 너는 방법도 바쿠가 알려줘야 하고, 바쿠가 사라져도 그 자리에서 기다릴 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의도된 디렉팅으로 생각되는데) 초반부의 아사코는 스스로의 액션이 없는 인형 같은 모습이며, 타인의 행동에 리액션만 할 뿐이다. 

바쿠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고, 료헤이와 사랑하며 치유하고,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쿠를 다시 선택함으로 처음의 아사코로 돌아간다. (그전에도 료헤이는 마이에게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아사코가 성장하는 지점은 료헤이의 사랑을 받았을 때가 아니다. 아사코가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깨닫는 순간. 돌아가야겠다는 순간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면허도 없고, 바쿠와 료헤이가 운전하는 차에서 잠만 자는(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아사코. 직접 자신의 두발로 걸어 (비난을 받으며 돈을 빌려서라도) 오사카의 료헤이에게로 돌아간다. 결말에서 바쿠와 함께하는 것이 아사코에게는 더 편한 삶일지도 모르지만, 옳다고 믿는 길로 꿋꿋이 걸어가는 것이 감독은 성장이라 보는 것이다.

재건의 필수 조건을 제시한다.

주변의 친구들, 토호쿠 마을 사람들, 사랑하는 료헤이까지 오랫동안 아사코를 비난하고 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로 한다.

료헤이의 회사는 결국 영문이 들어간 이름으로 상호를 바꾼다. 한자로만 표기된 로고가, 서양인들이 읽을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단어로 변화한 것이다. 일본을 전통을 중시하는 국가라고 칭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갈라파고스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고립되었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들은 변화해야 한다. 마야의 공연 무대가 박살 난 것처럼, 연극은 끝났다. 그들에겐 심각한 재난의 상처만이 남았다. 

일본이 재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욕을 먹더라도 꿋꿋이 돌아오는 아사코의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들의 주변을 돌아보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재건 올림픽 같은 허황된(바쿠 같은)것을 쫓는 게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료헤이)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평생 동안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 <멜로가 체질>의 '노승효'는 바쿠의 캐릭터를 참고한 것처럼 유사하다. 아주 재밌는 드라마이니 꼭 보시길. *왓챠플레이에서 시청가능.
  • 바쿠와 료헤이 역의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배우 '박서준'을 닮았다. (아주 잘생김) 그가 주연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도 추천한다. *왓챠플레이에서 시청 가능.
  • 아사코 역의 '카라타 에리카'는 배우 '이병헌'이 있는 BH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배우, 성공적?) <아스달 연대기>에 출연했고,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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